“지킬 수 없는 의무 부과해 놓고, 사고 나면 처벌하겠다” 누가 봐도 무리
건설산업 안전문화 확산은 참여 주체 모두의 책임과 역할이 성실히 이행돼야
기업과 경영자를 특정해 처벌수위 대폭 높혀 과잉입법 소지가 매우 법안
[오마이건설뉴스-오세원기자]국민청원과 함께 지난 6월 발의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언’ 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에 대해 산업계는 이미 안전사고 방지를 위한 다양한 제도와 법률이 운영되는 건설산업의 경우 법안의 제정과 적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강력한 입장이다. 국내의 환경과 건설업의 특성을 고려한 신중한 법안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근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이하 ‘건단련’)는 16개 건설단체 명의로 현재 국회에서 논의중인 <중대재해기업처벌법>입법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하는 탄원서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더불어민주당ㆍ국민의힘에 제출했다.<‘기획좌담-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관련 건설산업 안전관리 개선’ 3~5면>
건단련은 안전사고가 모두 과실에 의한 것임에도 고의범에 준하는 하한형의 형벌(2년 이상 징역)을 부과하는 것이 과연 맞느냐고 반문하면서 법안이 시행되면 과연 우리나라에서 기업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건설업의 경우, 건설업체마다 수십개에서 수백개의 현장을 보유하고 있어 2019년도 기준으로 볼 때, 10위 이내 업체의 현장수가 270개/社에 달하고 여기에는 67개의 해외현장도 포함되어 있다고 하면서, 법안은 CEO가 개별현장을 일일이 챙겨 사고발생을 막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같은 실정을 감안할 때 현실적ㆍ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임에도 이러한 사정은 헤아리지 않고 결과발생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사망사고에 대한 처벌수준을 보더라도 선진외국에 비해 우리가 훨씬 높은 실정이라고 했다. 사망사고 발생시 우리나라(산안법)는 7년이하 징역인데 반해, 독일은 1년이하 징역, 영국은 2년이하 금고, 미국ㆍ일본은 6개월이하 징역 등으로 우리나라가 훨씬 높다는 것이다.

EU의 경우 처벌보다는 경제적 인센티브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EU 회원국은 안전관리 비용ㆍ연구개발비 등에 대한 보조금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독일은 연간 근로자당 최대 500유로까지의 안전비용에 대한 세금혜택 부여, 프랑스는 안전 기술개발투자에 대한 세금혜택 부여 등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사망사고 때문에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의 안전관리 노력이 매우 소홀한 것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건설업체들은 법령에서 정한 것 이외에도 전사적(全社的) 안전관리 차원에서 CEO의 특별점검, 무재해 펀드(Fund) 조성, 안전체험학교 건립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협력업체 지원을 위해 신규 협력업체 대표자ㆍ현장소장 교육, 안전우수 협력업체 포상 등을 실시하고 있다.
건단련은 “우리나라 산업안전 정책의 패러다임이 예방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시설개선 등 안전관리에 투자하는 기업에게는 세제혜택 등 인센티브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법령에서 정한 안전기준 이상 충분히 준수한 경우 사고발생시 일정부분 인정받을 수 있도록 함으로써 지금 하고 있는 안전투자가 소모성 비용이 아니고 언젠가는 보상받을 수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적자만회를 위한 무리한 공기단축은 사고발생에 치명적이므로 적정공사비와 적정 공사기간이 확보될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단련 관계자는 “중대재해 발생에 대해 기업이 무한책임을 져야 한다면, 기업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어 그야말로 기업의 운명을 운(運)에 맡겨야 하는 상황이 도래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하면서,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법안이 알려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처벌 만능의 법안 제정을 쫓기듯 밀어붙이면 기업들은 설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며 입법을 즉각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지방소재 중소건설사 A社 대표는 “당연히 우리가 일하는 것은 누구나가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하는 것이라서 안전한 환경에서 일하게 만드는 책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건설현장의 경우 사업주가 매순간 모든 현장의 일거수일투족을 관리할 수 없는 현실이다”며 “(지난 1월 미국뉴욕 방문시 한 현장 방문사례를 거론하며)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방문한 현장의 안전시설이 우리들의 현장보다 훨씬 허술해 보였는데 오히려 지표상 사고는 우리보다 적은 것을 보면, 사실 안전이라는 것은 시설의 문제라기보다 의식의 문제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우리는 그냥 손쉬운 방법으로 관련자 처벌로 모든 것을 다했다고 위로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지”라고 답답한 심경을 토로했다.
대형건설사 B社 관계자는 “50억원 이하 소규모공사는 낙찰율이 90%이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전사고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공사기간은 너무 길어서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특히 장기계속공사는 평균 7~8년 소요된다. 사실상 이는 6개월~1년 적정 공기의 공사 물량이다. 문제는 자격있는 낙찰사인가와 기술자들의 설계 및 시공능력 부족이 아닌가 싶다. 핵심은 입/낙찰제도의 후진성이 아니가 싶다”고 지적했다.
건설단체 한 관계자는 “공사비 현실화, 충분한 공기 확보가 필요하다. 또한, 제일 중요한 것은 작업자의 안전의식 고취다. 외국근로자들이 건설현장을 점령하고 있는 상황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법은 모든 안전사고의 책임을 건설업체에 떠넘기려는 악법이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 는 “사후처벌이 아닌 사전예방 정책ㆍ제도가 나와야 할 때다”고 강조했다.